HBM4 양산 원년: 삼성·SK하이닉스, NVIDIA Rubin 위에서 다시 충돌하다
1. HBM4가 다시 그린 메모리·파운드리 경계선
HBM4(High Bandwidth Memory 4)는 단순히 다음 세대 메모리가 아닙니다.
JEDEC가 2025년 표준 JESD270-4를 확정한 뒤, NVIDIA·삼성·SK하이닉스·TSMC가 그동안 따로 굴러가던 메모리·파운드리 사업을 한 보드 위에서 묶어내기 시작했습니다.
핵심은 베이스 다이(Base Die)입니다.
- HBM3E까지의 베이스 다이는 메모리 칩을 받쳐주는 단순한 인터페이스 층에 가까웠습니다.
- HBM4부터는 로직 회로가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별도의 칩으로 진화했습니다.
- 이 칩을 어디서, 어느 공정으로 찍느냐가 곧 성능·원가·공급선을 결정합니다.
기존 글 HBM3E 전쟁: 삼성·하이닉스가 AI 시대의 승자가 되는 법이 "수율과 인증"의 이야기였다면, HBM4 라운드는 "메모리 회사가 파운드리를 어떻게 끌어들이느냐"의 이야기로 무대가 바뀌었습니다.
2. HBM4 사양 한눈에 보기
JEDEC가 발표한 HBM4 표준은 핵심 지표가 한 단계씩 점프했습니다.
- 인터페이스 폭: 2,048-bit (HBM3E 1,024-bit의 2배)
- 핀당 속도(JEDEC 기본): 8 Gb/s
- 스택당 최대 대역폭: 약 2 TB/s (HBM3E 1.2 TB/s 대비 약 1.7배)
- 채널 수: 32 채널 (HBM3E 16 채널의 2배), 각 채널이 2개 pseudo-channel
- 적층 옵션: 4-Hi / 8-Hi / 12-Hi / 16-Hi
- 다이 용량: 24 Gb 또는 32 Gb
- 최대 큐브 용량: 64 GB (32Gb × 16-Hi)
- 신규 구조: 데이터·커맨드 버스 분리 → 동시 연산 시 충돌·지연 감소
특히 인터페이스가 2배로 넓어진 게 결정적입니다.
같은 클럭에서도 한 사이클당 두 배의 데이터가 흐르므로, GPU가 메모리를 기다리는 시간이 본질적으로 줄어듭니다. 이는 추론 비용 자체를 낮추는 인프라 변화입니다.
3. 양산 시간표: 삼성이 먼저, SK하이닉스가 합류
두 회사의 시계는 단 1~2개월 차이입니다.
- 삼성전자: 2026년 2월부터 NVIDIA향 HBM4 출하 시작
- SK하이닉스: 2026년 3월 합류, NVIDIA Rubin용 본격 공급
- NVIDIA Vera Rubin: 2026년 하반기 본격 양산, HBM4 전용 플랫폼
업계는 SK하이닉스가 NVIDIA HBM4 물량의 약 60~70%를 가져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.
HBM3E 시기와 비슷한 비중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가 달라졌습니다. 삼성이 이번에는 사전 인증을 통과한 채 출발선에 섰다는 점입니다.
4. NVIDIA의 새 룰: 10Gb/s에서 11.7Gb/s까지
NVIDIA는 HBM4 인증을 두 단계로 운영했습니다.
- 10 Gb/s 1차 인증 — JEDEC 기본보다 빠른 사양, 표준 Vera Rubin 라인업용
- 11~11.7 Gb/s 2차 인증 — 최상위 SKU·차세대 라인업용 마진 검증
- 삼성: 두 단계 모두 통과한 뒤 양산 발주 단계 진입
- SK하이닉스: 11 Gb/s 단계 최적화에 시간을 더 쓰고 최종 샘플 제출
이 차이는 단순한 1~2개월 일정 지연이 아닙니다. 고가 SKU에서 누가 더 많은 마진을 가져갈지를 결정하는 변수입니다.
5. 베이스 다이 파운드리 전쟁: 삼성 in-house vs SK·TSMC
HBM4 라운드에서 가장 크게 갈린 지점은 베이스 다이를 어디서 만드느냐입니다.
| 회사 | HBM4 베이스 다이 공정 | 다음 단계(HBM4E/HBM5) |
|---|---|---|
| 삼성전자 | 자사 4nm (in-house) | HBM4E 베이스 다이부터 2nm 검토 |
| SK하이닉스 | TSMC 12nm (메인스트림) | HBM4E 커스텀은 TSMC N3P |
| 마이크론 | 외주 전환 지연 | 멀티 소싱 후보군에서 멀어질 우려 |
삼성은 자사 파운드리를 끌어들여 메모리·로직 통합을 노립니다.
4nm 베이스 다이는 풀 노드 GAA는 아니지만, 메모리·파운드리 동시 매출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큽니다.
반면 SK하이닉스는 TSMC와의 동맹을 강화해 두 갈래로 나눕니다.
- 메인스트림: TSMC N12 베이스 다이로 안정적인 수율과 가격
- 프리미엄(HBM4E): TSMC N3P 베이스 다이로 전력 효율 약 2배 확보
TSMC는 N3P 베이스 다이가 기존 대비 약 2× 전력 효율을 가져온다고 발표했고, 이는 HBM4E·HBM5 단계에서 결정적인 무기가 됩니다.
6. NVIDIA 너머: 멀티 소싱이 만드는 두 번째 시장
HBM4는 NVIDIA만의 메모리가 아닙니다.
- AMD Instinct MI400: HBM4 채택, 삼성·SK 양쪽에서 조달
- Google TPU 차세대: HBM4E 검토 단계, TSMC 베이스 다이와 묶음 가능성
- AWS Trainium 후속: HBM4 적용으로 자체 칩 경쟁력 강화
하이퍼스케일러는 공급 안정성을 위해 멀티 소싱을 고집합니다.
이는 점유율 2위 입장에서 삼성에게 결정적 기회입니다. NVIDIA에서 60% 빼앗기더라도, 비(非)NVIDIA 시장에서 30~40% 점유율만 잡으면 매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.
7. 다음 라운드는 어디서 갈리나
2026~2027년 HBM4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변수는 셋입니다.
-
캐파 증설 속도
- 삼성은 2026년 HBM 캐파를 약 50% 확대 계획
- SK하이닉스도 청주·이천 라인 증설 가속
-
HBM4E·HBM5 로드맵
- HBM4E 베이스 다이는 TSMC N3P 기반, 2027년부터 본격화
- 삼성은 HBM5 단계에서 2nm 베이스 다이로 정면승부 예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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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IM(Processing-in-Memory) 표준화
- 베이스 다이에 로직이 들어간 만큼, 메모리 내부 연산이 표준 기능으로 자리 잡을지 여부
특히 베이스 다이가 로직 칩이 된 이상, 메모리 회사는 이제 작은 SoC 회사가 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.
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"메모리 의존"이라는 오랜 평가에서 벗어나, 시스템 반도체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는 분기점이기도 합니다.
8. 결론: 1~2개월 차이가 만드는 새로운 질서
HBM3E 라운드에서는 SK하이닉스가 NVIDIA를 거의 독점하며 승자가 명확했습니다. 그러나 HBM4 라운드는 다릅니다.
- 삼성전자: 사전 인증을 통과한 채 출발해, 비(非)NVIDIA 시장과 베이스 다이 in-house 전략으로 다층 매출 라인 구축
- SK하이닉스: NVIDIA 점유율과 TSMC 동맹을 양손에 쥐고 가장 안정적인 단기 매출 곡선 확보
- 마이크론: 베이스 다이 외주 전환을 계속 미루다가 멀티 소싱 후보군에서 멀어지는 추세
결국 2026년 한 해는 "양산을 시작했느냐"가 아니라 "11.7 Gb/s에서 누가 더 일찍 안정화했느냐"가 점유율을 결정합니다.
그리고 그 답은 2026년 하반기 NVIDIA Rubin 매출이 풀리면서 숫자로 드러날 것입니다.
참고: 본 포스팅은 JEDEC HBM4 표준 문서(JESD270-4), TrendForce·Tom's Hardware·Korea Herald·SamMobile 보도, 삼성전자·SK하이닉스·TSMC의 공식 발표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.